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문단 편집) == 테러 ==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미얀마 순방 이틀째인 10월 9일의 공식 일정은 오전 10시 30분에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었다. 미얀마를 방문하는 해외 주요 인사들은 다 하는 의례행사로, 쉽게 말해 한국을 방문하는 해외 정상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사를 위해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1925)|이범석]] 외무장관 등의 정부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먼저 인야레이크 호텔에서 아웅 산 묘소로 별도 승용차편으로 이동해서 10시 18분 쯤 아웅 산 묘소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계철 주 미얀마 대사,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심상우]]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 개그맨 [[심현섭]]의 아버지이며 당시 심현섭은 13살이었다. 참고로 당시 당 총재는 [[전두환|그 분]].], [[민병석(의사)|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등 나머지 수행원들은 영빈관에서 의전 행렬의 선발대로 10시 10분 경에 아웅 산 묘소로 출발하여 서석준 부총리 등 일행들과 최종 합류하도록 되어 있었다. 현지 도로 사정을 잘 아는 이 대사가 탑승한 차량이 앞장서서 안내했다. 10시 26분 경 [[태극기]]를 단 감색 계통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s-3.5|벤츠 280SE]] 차량을 선두로 한 제대 차량이 앞뒤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묘소에 도착한 후 공식 수행원, 기자, 경호원들의 시선이 자연히 이 차에 모아졌다. 창문이 선팅되어 있어 차량 내부는 잘 보이지 않았으며 이 차에서 내려 도열에 합류한 이들은 바로 이계철 주 미얀마 대사 일행이었다. 수행원들끼리 간단히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고 "곧 각하가 오실 테니 모두 자리에 정렬하자"는 이 대사의 말에 수행원들 모두 2열 횡대로 도열했다. 기자들도 촬영 준비를 하는 등 분주했다. [[파일:attachment/burma02.jpg|width=600]] 위의 사진은 이렇게 부산한 가운데 촬영된 대한민국 정부 수행원들이 참배를 위해 도열한 모습을 담은 것으로, '''테러가 발생하기 불과 몇 초 전에 촬영된 사진'''이다. 즉 이것이 희생된 수행원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당시 일간지 사진기자가 흑백필름 및 컬러필름을 각각 장전한 카메라 2대로 촬영했는데 컬러필름 카메라는 다행히 무사해서 이처럼 깨끗하게 사진이 나왔으나 흑백사진은 매우 훼손이 심각해서 당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복원한 사진이라는 얘기는 잘못되었고 애초부터 컬러, 흑백 따로 찍은 사진이라 그렇다. [[파일:8000453829_20100510.jpg]] 참사 직전의 흑백 사진인데 사진의 왼쪽 아래에 뿌옇게 바랜 부분은 사진을 찍은 기자의 혈흔이다. 카메라 주인 [[연합통신]] 최금영 기자[* 시험 삼아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 우연찮게 테러 직전의 장면을 흑백 사진으로 찍었다. 테러로 중상을 입었으나 살아남았다. 참고로 이 사진으로 1983년 한국기자협회 특종상과 한국신문협회상을 수상하였다.]의 피가 카메라 속으로 흘러들어간 것이었다. 이 사진도 그나마 상태가 나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의 필름이 들어있던 카메라는 파편에 맞아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고 [[필름]]들은 빛이 들어가는 바람에 대부분은 인화해봤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도저히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운이 좋아 피사체들의 형상을 좀 알아볼 수 있었던 유일한 필름 컷이 이것이었다고 한다. 이날 예정되었던 참배 대형은 아래와 같으며 이름이 올라온 인물들 중 전두환을 비롯한 '''굵은 글씨'''로 표기된 이들만 생존했다. 여기 적힌 나이는 [[연 나이]] 기준으로 당시 나이다.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최재욱]](43)[br]공보 비서관''' || 하동선(47)[br]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이재관 공보비서관.] || '''[[황선필(언론인)|황선필]](44)[br]대변인[br](미도착)'''[* 당일 아침에 영빈관에서 대통령에게 언론 관련 보고를 하고 나서려는 찰나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붙잡았고 늦게 나온 그가 타야 할 차는 이미 누가 타고 가버린 뒤였다고 한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묘소로 향하는 와중에 멀리서 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 김재익(45)[br]경제수석 || 민병석(54)[br]대통령 주치의 || 김용한(54)[br]과기처 차관 || 강인희[br]농산부 차관 || 이기욱[br]재무부 차관 || || '''[[이기백(군인)|이기백]](52)[br]합참의장''' || [[심상우]](45)[br]국회의원[*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이었다. 당시 총재는 [[전두환]]이었다.] || 함병춘(51)[br]대통령 비서실장 || 이계철(54)[br][[주미얀마연방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주 미얀마 대사]] || 서상철(48)[br]동자부 장관 || 김동휘(51)[br]상공부 장관 || 이범석(58)[br]외무부 장관 || 서석준(45)[br]경제부총리 || ||<-8> '''[[전두환]](52)[br]대통령[br](미도착)''' ||}}} 그러니까 미도착한 사람을 제외하면 15명 중에서 가장 구석에 있던 2명만 살아남고 나머진 현장에서 즉사했다.. 이기백 [[장군]]은 입고 있던 [[대한민국 육군|육군]] [[정복(의복)|정복]]의 [[약장]]과 철제 부착물들이 방편 효과를 내 줬고 폭발 즉시 [[전속부관]] [[전인범]] (당시)[[육군]] [[중위]]가 붕괴된 건물 잔해로 뛰어올라 "의장님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으면서 즉시 들처업고 후송시켰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이기백 장군은 사건 이후 자신이 현장에서 입은 정복을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 폭파 순간은 [[MBC]] 카메라기자 임채헌(1942~2016)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86655|촬영했는데]] 당시 광경은 너무 처참했다. 1991년 [[MBC 뉴스데스크|MBC 창사 30주년 특집 뉴스데스크]]에서 테러 당시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사용되었는데 "MBC 뉴스가 단독으로 촬영한 아웅산 사건은 당시 너무 잔혹하다는 이유로 방송되지 못했습니다"라는 해설이 나왔다. 해당 영상은 1년 뒤에 일부 편집된 상태로 방송되어 충격을 준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